[황호택 칼럼]‘박사모 착시’로는 동정 못 받는다

[동아일보] 입력 2017-02-01 03:00:00 | 수정 2017-02-01 11:03:36

황호택 고문 대통령을 법률적으로 돕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탄핵 이후의 형사처벌을 더 걱정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그는 변호인단보다는 사태를 합리적으로 보고 있었다.

 어제 퇴임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8명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점지한 사람이 5명이나 되지만 대통령 탄핵처럼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중차대한 사안에서는 헌법재판관은 임명권자를 의식하지 않고 법률가의 양심으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박한철 헌재소장도 박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변호인단의 지연작전을 견제하며 탄핵에 대해 엄정한 인식을 드러냈다. 

 박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이 7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헌법적 비상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공개된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헌재는 일반 중요 사건의 경우에도 될수록 9명 재판관 전원이 참여해 재판하기 위해 해외출장 일정 등을 조정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8명도 아니고 7명이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박 소장의 말은 그 나름대로 표 계산을 해본 결과일 수도 있다. 헌법재판관이 8명일 때 두 명이 탄핵을 반대하고 6명이 찬성하면 탄핵은 인용된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이 7명일 때는 두 명이 반대할 경우 탄핵은 기각된다. 이럴 경우 국민 설득이나 헌재의 대표성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기 쉽다.



 박 대통령의 정규재TV 회견 후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가 대통령의 형사처벌 방식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길래 “사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큰 처벌과 불명예는 없다. 지금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만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면 꼭 교도소에 보내야 하느냐는 여론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특검의 영장 청구나 법관의 구속 불구속 결정에도 민심의 향배가 중요한 고려 요소일 텐데 박 대통령이 누구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대응방식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탄핵이 인용돼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헌법에 보장된 재임 중 불소추 특권을 잃고 특검의 강제 수사를 당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구속 기소된 최순실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기재돼 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으로선 박 대통령을 불러 조사한 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처럼 법원에 공을 넘겨버릴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까지 수의(囚衣)를 입고 구치소에 들어간다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또 한 번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반란과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을 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중 사법적으로 온전했던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뿐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한 정규재TV가 얼마 전 이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독설을 날렸다. 이 전 대통령은 친이(親李)계 국회의원 연말 만찬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에 관해 “뭐라고 얘기하든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까 국민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했는데 정규재 주필은 이를 탄핵 지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정 주필은 “이 전 대통령을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을 털듯 털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느냐”고 신랄한 공격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은 “박 대통령이 봐줘서 이 대통령이 구속되지 않았다는 말 같은데,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원외교, 포스코, 4대강 등과 관련해 집중 수사를 받았지만 정권 차원의 비리가 나온 것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정규재TV에서 “태극기 집회의 참가자들이 눈 날리고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다”라며 고마움과 연민을 표시했지만 촛불과 태극기의 대결 구도를 조성하는 식으로는 헌재는 물론이고 특검과 법원의 판단을 바꿔놓기 힘들다. 경북지역의 한 공공기관장은 “나도 박 대통령이 저렇게 돼서 가슴이 아프지만 박사모와 태극기 집회의 세력이 촛불보다 두 배 많다고 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착시(錯視)”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엄동설한에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박사모만 바라봐서는 민심의 바닥에 잔불처럼 남아 있는 동정심마저도 꺼뜨려 버릴 수 있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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