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기도는 ‘보고’ 향기는 ‘듣는다’

[동아일보] 입력 2017-02-01 03:00:00 | 수정 2017-02-01 03:35:04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을 모시고 보여주는 길상사 안 ‘진영각(眞影閣)’. 스님의 유골은 오른쪽에 보이는 매화나무 아래에 안치됐다.조성하 전문기자 한겨울에만 꽃을 피우는 매화(梅花). 겨울 진객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2월이었다. 산골에서 지내시던 법정 스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매화차를 나누자는. 장소는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매화차는 이름만 들어봤던 터였는데 직접 대하니 멋졌다. 백자 찻잔에 따뜻한 물을 담고 그 위에 하얀 꽃 한 송이를 띄웠으니. 그런데 맛은 무미(無味)다. 향도 마찬가지. 그래서 실망스러웠다. 그날 꽃은 차를 나누던 당우 옆 나무에 핀 것. 그 나무는 지금도 여전하다.

 당시엔 별 감흥이 없던 매화차. 하지만 스님께서 일부러 불러 나누신 데는 뜻이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걸 깨친 게 아쉬울 뿐이다. 그건 ‘캐논(Canon)’이란 카메라의 그 이름을 추적하던 중에서였고 핵심은 관세음(觀世音)보살이다. 캐논은 관세음을 줄여 부르는 ‘관음(觀音)’의 일본어 발음 ‘간논’에서 왔다. 1930년대 작명 땐 ‘콰논’이던 게 1947년에 이렇게 정착됐다. 세음이란 ‘세상의 소리’ 즉 ‘중생의 기도 소리’다. 그리고 이건 바다 한가운데 보타낙가산의 관세음보살이 들어준다.

 그런데 이 보살님, 기도를 귀로 듣지 않는다. 눈으로 본다. ‘들을 청(聽)’의 청세음이 아니라 ‘볼 관(觀)’의 관세음이다. 그 이유,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는 중생의 무지에 대한 경종이자 그래도 존재하는 진리에 대한 웅변이다. 캐논은 이 점에 착안해 택한 이름이다. 어떤 기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찾는 관세음보살 이미지의 이 스마트한 차용, 눈에 보이지 않는 심상(心想)까지 담아내겠다는 강력한 다짐이다. 하이브랜드 지향 의지로 이보다 더 확실한 표현이 있을까 여겨지는 탁월한 작명이다.

 그런데 그걸 알아낸 순간 퍼뜩 머리가 밝아졌다. 한겨울에 매화차를 나누신 스님의 깊은 뜻이 확연해진 것이다. 삶에 향기를 지니되 이렇듯 은은할 것이며 매사 생각과 행동엔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것을 음미하듯 진정으로 대하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은 그걸 ‘암향(暗香)’과 ‘문향(聞香)’으로 설파하셨다. ‘어두운 향(암향)’이란 날 듯 말 듯 여리고도 여린 매화의 향기다. 후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귀로 듣는다’. 그게 ‘문향(聞香)’이다. 향을 맡음에 ‘들을 문(聞)’자를 동원한 선각의 혜안. 중생의 기도를 ‘보는’ 관세음의 조어(造語)와 같은 맥락이다.

 매화는 사군자(四君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중 하나다. ‘완전한 인격체’ 군자의 네 가지 덕목 중 하나를 상징하는데 그건 시련과 희망, 성취다. 모진 추위도 마다않고 피는 매화. 그런데 봄꽃이 아니다. ‘봄을 알리는’ 꽃이다. 열매도 맺는다. 사군자 중 결실을 이루는 것, 오직 이 매화뿐이다. 그날 길상사의 한옥은 따뜻했다. 방 안 온돌은 뜨끈했고 남향받이 미닫이문의 한지 창으론 따사로이 햇볕이 스몄다. 게서 스님은 매화차를 내시며 군자향(君子香)을 이르셨다. 삶의 지향(志向)이 이와 달라서는 안 됨을 에둘러 말씀하신 듯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이 내겐 마지막이었다. 입적(2010년) 때까지 다시는 뵙지 못했으니.

 스님은 매화차를 나누시던 그 방에서 하직하셨다. 진영과 유품이 모셔진 진영각이란 당우다. 며칠 전 나는 거길 찾았다. 석 달 이상 연이은 국정 농단 수사와 재판, 촛불집회와 대항 시위에 대권 장악에만 혈안이 된 정치권의 뻔뻔한 잰걸음…. 그런 소란에 찌든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파. 그런데 게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쳤다. 매화차에 꽃을 내줬던 그 나뭇가지에 돋은 꽃눈이다.

 나무는 스님 유골이 안치된 곳에 친구처럼 서있다. 그리고 가지엔 눈이 돋아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스님을 뵌 듯해서다. 나라가 끝도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와중이라 스님 빈자리가 너무도 커 보여 더 그랬다. 스님이 계시면 뭐라 말씀하실까. 눈 돋은 가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일갈하지 않으실까. 아무리 분탕질을 해도 세상 질서는 어김없으니 제각각 할 일에 충실하라고. 어쩌면 매화차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악취에 코를 묻지 말고 귀로 듣듯 진정으로 치열해야 볼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진리를 향해 정진하라는 뜻을 담아. 허물 들추기에 진력하기보단 혼탁한 물을 맑게 정화시키는 연꽃같이 살라고. 3주 후(22일)는 스님의 열반 7주기 기일(음력 1월 26일)이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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