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고추

[동아일보] 입력 2017-02-01 03:00:00 | 수정 2017-02-01 03:31:44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불이야!”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뛰던 날은 아버지 회사의 야유회 날이었다. 

 아버지 친구들은 술안주 삼아 드시던 계란말이 한 조각을 나에게 건네 주셨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나는 한입에 넣고 씹었다. “으악!” 소리치는 나를 보고 모두들 재미있어 했지만 물과 우유로도 혀에 붙은 불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제대로 된 매운 고추 맛을 본 것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때였는데 그날 이후 나는 왜 어른들이 스스로 고문을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할아버지는 농부셨다. 사계절이 따뜻한 오키나와는 사탕수수를 많이 심고, 돼지와 염소, 닭도 같이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사료가 될 만한 잡초도 많았다. 그 당시 할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밥상은 따끈한 국물이나 야채를 넣어 볶은 면이었다. 또 식사 때마다 식초에 절인 고추 피클을 꺼내 곁들여 드셨다.

 오토만 제국을 통해 모든 교역이 이루어지던 시절 유럽의 교역자들은 향신료와 실크, 아편을 찾아 인도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반대편으로 돌아도 아시아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컸고, 유럽과 아시아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 그는 카리브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곳을 인도로 믿었으며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불렀다. 비록 인도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여기서 발견한 고추는 남유럽에 새로운 맛을 전파하게 된다.

 스페인 정복자들도 당시 고가였던 후추를 찾아 나섰고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라는 이유로 페퍼로 이름 지어졌지만, 칠리페퍼로 불리는 고추와 우리가 흔히 아는 블랙페퍼 후추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향신료다.

멕시칸 고추 소스가 들어간 타코와 케사디야. 멕시코인들의 고추 사랑은 항상 토르티야와 함께한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식재료 준비를 맡는 대부분의 조리사는 남미 사람들이다. 당일 사용할 식재료 준비만으로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직원들의 식사로는 빨리 준비할 수 있는 타코나 부리토, 엔칠라다와 곁들이는 구운 고추, 토마토 살사를 자주 먹었다. 가끔 볶은 고추에 양파, 마늘, 오레가노를 넣고 간 소스에 돼지 앞다리를 넣고 푹 끓인 것을 준비하는 동안 에콰도르 출신 조리사는 전날 남은 생선으로 세비체를 준비한다. 이들은 뉴욕 요식업계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는 최고의 일꾼들이다.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는 고추는 각각 특유의 맛이 있다. 처음 서울에서 요리를 가르치던 시절 ‘블랙몰레’ 같은 환상적인 멕시코 고추 요리를 맛보여 주고 싶었다. 세 가지 다른 고추와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까지 들어가는 이 요리는 먹어 보기 전에는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하고 깊은 아스텍 특유의 맛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이 고추를 주문했는데 몇 달 후 세관에서 50%의 관세를 내고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항공 운임도 만만치 않은 터라 차라리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나 트러플을 주문해 맛을 보여 줄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인도 요리사 제프리 마두라이는 “한번 매운맛에 길들여지면 순한 맛으로 돌아갈 수 없고 더 매운맛을 갈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치 마약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매운 정도에 따라 신경계를 자극해 천연 마취제인 엔도르핀을 방출하는 황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 말에 나도 동의한다.

 내 할아버지는 시력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셨다. “앞을 볼 수 없는 삶은 의미 없다”며 불평을 하셨지만 그 후로도 10년 더 사셨다. 미국 뉴욕에서 살던 때라 자주는 아니지만 고향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고추 피클을 안주 삼아 함께 먹었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고추 피클과 농장은 그대로였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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