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괘릉 무인상, 아라비아인 아닌 금강역사상이 모델”

[동아일보] 입력 2017-02-01 03:00:00 | 수정 2017-02-01 02:07:51

경북 경주 원성왕릉(괘릉)에 있는 무인상.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서역인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데 이어 금강역사상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견해가 추가로 제기됐다. 동아일보DB 부리부리한 눈과 덥수룩한 턱수염, 커다란 코…. 경북 경주 원성왕릉(괘릉)을 지키고 있는 무인(武人)상은 얼핏 봐도 한민족의 얼굴이 아니다. 학계 일각에선 생김새는 물론이고 머리에 두른 띠, 허리에 매단 주머니 등을 근거로 괘릉 무인상이 서역(아라비아)인을 모델로 했다고 본다. 이는 ‘경주 계림로 보검’(보물 제635호)과 더불어 신라∼아라비아의 장거리 교역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졌다. 그런데 괘릉 무인상의 기원이 서역인보다 금강역사(金剛力士·불교의 수호신)상 같은 불교 조각이며, 원성왕 사후 60여 년 뒤 경문왕에 의해 조성됐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신라왕릉의 석인(石人)상’ 논문에서 38기의 신라왕릉 중 석인상을 갖춘 괘릉과 성덕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석인상과 석사자, 십이지상, 화표석 등을 두루 갖춘 괘릉에서 신라왕릉 중 처음으로 무인상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신라 하대 석학이던 최치원이 쓴 ‘숭복사 비명(碑銘)’이 주목된다. 경문왕이 곡사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숭복사로 이름을 바꾼 경위를 적은 비석이다. 괘릉은 곡사가 옮겨간 뒤 빈자리에 들어섰다.

 숭복사 비명에는 ‘선대(원성왕)를 계승해 절을 중수하고 위엄으로 능역을 ‘호위’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임 교수는 호위의 구체적인 의미를 석인상 설치로 봤다. 따라서 괘릉 무인상의 조성 시기는 원성왕이 죽은 직후가 아닌 경문왕 즉위 초인 9세기 중반 이후라는 것이다. 또 원성왕 사후 소성왕, 애장왕 집권기는 사회 혼란기여서 선대 왕릉을 꾸미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정황도 있다.

 그렇다면 괘릉 무인상의 모티브는 무엇인가. 임 교수는 9세기 전반 서역인들의 신라 입국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들을 모델로 석인상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당시 세계 제국이던 당나라가 서역인들의 활동을 대대적으로 단속했으며, 신라의 국내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괘릉 무인상의 얼굴이 경주 서악동 고분 문비(門裨)석의 금강역사상과 비슷한 게 오히려 눈길을 끈다. 무인상에서 머리에 두른 띠나 허리에 찬 둥근 주머니와 같은 복식은 서역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 복식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라왕릉 십이지상이 입고 있는 갑옷이 사천왕상과 흡사하고 사자상도 불교 사자상을 닮는 등 불교 조각의 광범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임 교수는 “무인상은 사찰 입구에서 수호 역할을 하는 불교의 금강역사상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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